좋은 조직을 결정하는 것은 조직도가 아니라 사람의 성과다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48장: 조직에 대한 결론 — 조직 설계 8주를 닫으며
들어가며
매년 연말이면 조직도가 다시 그려진다. 본부가 생기고, 실이 쪼개지고, 누군가는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런데 새해에도 작년의 마찰은 유사하게 반복된다. 조직도는 바뀌었는데, 성과 창출이 더 용이해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컨설턴트 시절, 나는 ‘이상적인’ 조직을 그리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 원칙에 충실하고, 빈틈이 없고, 보기에 깔끔한 조직도.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 조직도가 기능하려면 어떤 가정이 참이어야 하는지 물은 기억이 없다. 깔끔한 그림을 그리는 일과, 그 그림이 작동하는 일은 전혀 다른 것이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지난 여덟 주에 걸쳐 조직 설계를 읽어왔다. 48장은 그 장정을 닫는 장이다. 드러커는 이 장에서 강조한다. 좋은 조직의 기준은 조직도의 아름다움이나, 명확함이 아니다. 좋은 조직의 유일한 시험대는, 그 안에서 사람들이 내는 성과다.
조직도 뒤에 숨겨진 ‘가정’을 검증하라
모든 조직 설계 속에는 가정이 숨겨져 있다. 이런 조직 하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일하고 소통하며 성과를 낼 것이라는 가정. 하지만 설계 시점의 가정이 항상 현실에서 그대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어떤 가정들은 무너질 경우 조직에 동맥경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조직 구조에 대한 가정 검증이 필수인 이유이다.
드러커는 GE의 경험을 사례로 든다. 1950년대 초 GE 경영진은 모든 제품 조직을 ‘제조 사업’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어떤 제품 조직들은 이 가정이 맞지 않았다. 이들은 새로운 공정이나 제품 라인을 개발하기 위해 세워진 혁신 조직들이었다. 전형적인 제조 사업의 기능 구조에 이들을 앉히자, 조직은 질식했다. 하지만 이 가정은 조직 설계 당시 검증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여기서 드러커가 남긴 교훈은 단순하지만 무겁다. 가장 위험한 가정은, 가장 그럴듯하고 당연해 보이는 가정이다.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그래서 검증되지 않은 채 조직 전체를 조용히 지배한다. 드러커 자신도 이 GE 작업에 깊이 관여했고, 지금은 명백한 그것이 그때는 아무도 몰랐던 것이라고 담담히 인정한다.
이 오류는 70년 전 미국 기업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해마다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반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서비스는 가벼워졌지만, 인프라는 그대로였다
초고속 인터넷망과 IPTV를 운영하던 한 국내 통신·미디어 기업의 이야기다. 한때 IPTV는 강력한 차별화 수단이었다. 그러나 넷플릭스 같은 OTT가 일반화되면서 VOD 유료 결제율이 떨어졌다. 심지어, IPTV 구독 자체가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인프라 사업자였던 이 회사는 신규 서비스를 빠르게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에 몰렸다. 무겁고 느린 의사결정 구조로는 그 속도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이 회사는 글로벌 스트리밍 기업이 정립한 애자일 모델을 들여왔다. 서비스·고객·신성장에 닿는 영역을 스쿼드와 트라이브로 바꾸고, 의사결정을 실무에 바짝 붙였다. 인프라와 지원 기능은 기존의 부문 구조로 남겼다. 혼합형이었다. 혁신 업무에는 팀 구조를, 대규모 운영 업무에는 기능 구조를 적용한 그 자체는 겉으로 보기에는 교과서에 가까웠다.
문제는 그 안에 깔린 가정이었다. 서비스를 가볍게 만들면 서비스의 의사결정도 빨라지리라는 믿음이다. 실제로 서비스 조직은 가벼워졌고, 결정은 현장 가까이 내려왔다. 그러나 새로운 화면과 서비스의 상당수는 결국 인프라와 결합되어야 완성된다. 그리고 그 인프라는 여전히 무겁고 느리고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망의 안정성을 책임지는 조직이 서비스의 속도에 맞추기는 어려웠다.
여기서 충돌이 시작된다. 가벼워진 서비스 조직이 빠르게 내린 결정은, 무거운 인프라 앞에서 번번이 멈춰 섰다.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믿은 곳과 속도를 낼 수 없는 곳이 하나의 결정 안에서 부딪혔다. 구성원들은 이 구조가 정확히 어떻게 굴러가는지조차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도입 첫 해, 조직은 혼란에 빠졌다.
드러커가 48장에서 짚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팀이 맞는 자리에 팀을 쓰는 것은 옳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대규모 운영 업무까지 같은 속도로 끌고 가려 하면, 설계 원칙을 그 한계 너머로 쓰는 것이고 결과는 혼란뿐이다. “서비스를 가볍게 하면 서비스의 결정도 빨라진다”는 가정은 절반만 맞았다. 인프라와 무관한 결정은 빨라졌지만, 인프라와 결합되어야 하는 결정은 결코 빨라질 수 없었다.
구조를 베끼는 것과, 그 구조가 사람을 일하게 만드는지를 검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스쿼드와 트라이브라는 형식은 옮겨올 수 있다. 레고처럼 붙였다 뗐다 하는 유연함도 그림으로는 그릴 수 있다. 그러나 그 형식이 이 회사의 인프라가 가진 무게 속에서 정말 결정을 흐르게 하고 사람을 일하게 만드는지는, 옮겨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검증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가장 당연해 보였기에 아무도 검증하지 않은 가정이, 첫 해의 혼란으로 드러났다.
물론 이 개편에 이해할 만한 의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오랜 세월 복잡한 조직 사이를 오가며 협업을 풀어내던 고참들이 뒤로 물러나야 했다. 회사가 가장 어려운 매듭을 맡겨온 사람들이, 새 구조가 그 일을 대신해줄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자리를 비웠다. 그동안 그 복잡한 협업을 몇몇 사람이 떠안아 메워왔다면, 이번 변화는 그 일을 구조 안으로 되돌리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다만 그 일을 누가, 어느 수준에서, 어떤 권한으로 대신할 것인지까지 함께 설계되었는지는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 후 이 구조가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 나는 끝까지 지켜보지 못했다.
여덟 개의 장, 결국 하나의 이야기였다
드러커는 48장에서 또 하나의 원칙을 짚는다. 가장 단순한 구조가 최선이라는 것이다. 좋은 구조란 그것이 만들어내지 않는 문제로 판가름나며, 단순할수록 어긋날 것이 적다. 만능 설계 원칙 같은 것은 없다. 어떤 원칙도 저마다 한계를 지니고, 원칙이란 그저 도구일 뿐이어서 잘 쓰거나 잘못 쓸 수 있을 따름이다.
지난 여덟 주를 돌아보면, 우리가 짚은 실패들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핵심 활동을 정의하기 전에 조직부터 만들고(42장), 결정의 성격이 아니라 자리의 크기로 권한을 나누고(43장), 서로 다른 설계 원칙을 요구하는 일들을 하나의 틀에 묶었다(45·47장). 모두 구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착각한 데서 비롯된 오류였다. 구조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맺음말
컨설턴트 시절, 조직 구조 설계를 시작할 때 가장 많이 했던 작업은 글로벌 선도사의 조직도를 벤치마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여진 조직도 속에서는 어떠한 가정으로 왜 그렇게 조직도가 그려졌는지 알 수가 없다.
회사마다 성과를 내는 방식과 조직 문화가 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조직도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드러커가 48장에서 던지는 질문은 그 앞에 있다. 이 구조가 옳으려면 무엇이 참이어야 하는가. 그 가정을 우리는 검증했는가.
드러커는 이상적인 조직을 그리는 일과, 그 밑에 깔린 가정을 현실에서 검증하는 일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경고한다. 가장 위험한 가정은 가장 그럴듯하고 당연해 보이는 가정이라고.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검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의 회사가 놓친 “서비스를 가볍게 하면 서비스의 결정도 빨라진다”가 바로 그런 가정이었다. 절반만 맞는 가정 위에 우아한 구조를 세운 것이다.
그래서 개편안을 그리기 전에 적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이 그림이 작동하려면 무엇이 참이어야 하는가. 어떤 결합이 실제로 결과를 만들어내는가. 그리고 이 새 구조가 푸는 문제만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낼 문제는 무엇인가. 새 형식이 우아할수록, 그것이 새로 만들어낼 혼란을 함께 따져야 한다.
드러커는 48장을, 그리고 조직 설계에 관한 여덟 개의 장을, 한 문장으로 닫는다. 건강한 조직의 기준은 조직도의 아름다움도, 명확함도, 완벽함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 유일한 기준은 사람의 성과다 — the performance of people.
그러니 개편을 끝낸 뒤 물어야 할 질문은 조직도가 깔끔해졌는지가 아니다. 그 구조 안에서 사람들이 결정을 끝까지 내릴 수 있게 되었는가. 지난해보다 한 사람의 결정이 더 멀리, 더 빠르게 가닿고 있는가. 당신이 방금 그린 조직도는 사람을 일하게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일하는 법을 새로 배우게 만들고 있는가.
매주 월요일 아침 7시,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독서 토론 모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