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45장. 일과 과업 중심 설계 : 기능 구조와 팀
들어가며
1990년대 초반, 많은 국내 대기업들이 비슷한 시기에 팀제를 도입했다. 빠른 의사결정과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직책 체계가 단순해졌고, 과(課)가 팀이 됐고, 과장이 팀장이 됐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진짜 팀으로 일하고 있는가.
나 역시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리더로서 내가 이끌었던 조직들은 모두 ‘팀’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것이 진짜 팀으로 작동했는지 자신이 없다. 팀이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 명확한 미션, 공동의 목표, 함께 지는 책임 — 이 늘 잘 정의되어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이번 강독회에서 한 토론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회사에는 실질적인 의미의 팀제 조직이 없다.” 이름은 팀이지만, 기능 구조가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드러커의 45장은 이 간극이 왜 생기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한다. 팀제는 기능 구조의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작동 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른 조직이다. 그래서 팀제가 작동하려면 기능 구조와는 전혀 다른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일이 사람에게 가는가, 사람이 일로 가는가
드러커는 현실의 기업 대부분이 기능 구조를 뼈대로 삼는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제조 기업은 개발, 구매, 생산, 판매 등 기능별로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한다. 모든 사람이 자기 역할을 알고 있고, 전문성이 깊어지며, 조직이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규모와 복잡성이 커지면 역기능이 빠르게 나타난다. 전체 목표보다 자기 기능의 이익이 우선이 되고, 부서 간 소통이 단절되고, 의사결정이 최상위층에만 집중된다. 그리고 혁신에 취약해진다. 우리가 흔히 사일로 현상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 한계는 특정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 구조가 가진 구조적 특성이다.
팀 구조는 기능 구조와는 완전히 다른 원리로 설계된 조직이다. 기능 구조에서는 일이 기능 부서를 옮겨다닌다. 팀제에서는 과업이 먼저 고정되고, 다양한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 그 과업으로 이동한다. 조직의 무게중심이 ‘기능’에서 ‘과업’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효율화가 아니라 근본적인 원리의 전환이다.
다만 드러커는 모든 조직이 기능 구조를 버리고 팀제로 가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기능의 전문성과 안정성이 경쟁력의 원천인 영역에서는 기능 구조가 여전히 유효하다. 현실적인 접근은 기능 구조를 뼈대로 두되, 그 한계를 팀제로 보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팀제를 도입해야 하는가. 드러커는 두 가지 영역을 지목한다. 최고경영진의 일, 그리고 혁신 업무다. 두 일의 본질은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운영이 아니라 문제 해결이다. 풀어야 할 문제가 먼저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기능들을 유연하게 동원하는 일이다. 기능을 고정해두고 그 안에서 일을 돌리는 방식으로는 작동할 수 없다.
이름을 바꿨지만, 원리는 그대로였다
국내 대기업들이 팀제를 도입하던 시기, 변화의 핵심은 조직도의 명칭이었다. 보고 단계가 줄었다. 의미 있는 변화였지만, 드러커가 말하는 팀제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이 간극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새로운 전략 과제를 안고 만들어진 팀이다. 한 부품 제조사의 사례가 그렇다.
과업이 없으면 팀도 없다
몇 해 전, 한 국내 테크 부품 제조사가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부품을 파는 회사에서 고객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파트너로 바뀌겠다는 것이었다. 고객의 범위도 기존의 테크 제조사에서 최종 사용자로 확대되었다. CEO의 선언은 명확했다. 그런데 내부 경영진 인터뷰에서 나온 반응은 달랐다.
“우리가 이루려는 솔루션 컴퍼니가 무엇인가? 새로운 고객 확보, 밸류체인 확장, 종합적인 제공, 모두 동시에 이루는 것이 솔루션인가? 아니면 이 중 한 개만 추진해도 솔루션인가?”
“이제부터 우리의 고객과 경쟁하라는 뜻인가?”
“제조 기업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기업이 되겠다는 의미인가?”
이것은 과업에 대한 질문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불명확하면, 팀을 만들 수 없다. 드러커는 팀의 첫 번째 조건으로 ‘지속적인 미션(continuing mission)‘을 든다. 과업은 바뀌어도 팀의 존재 이유는 명확해야 한다.
이 회사가 솔루션 조직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솔루션이라는 개념이 조직 안에서 공유된 과업으로 정의되지 않았다.
사일로가 문제가 아니라, 권한이 없는 것이 문제다
같은 회사의 경영진 인터뷰에서 이런 발언이 나왔다.
“현재 기능별로 협업과 융합이 잘 되지 않고, 사일로 형태로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
많은 조직에서 사일로를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없애려 한다. 하지만 사일로는 기능 구조의 본질적 특성이다. 기능이 고도화될수록 각 기능은 자기 논리와 언어를 발전시킨다. 이것은 병리가 아니라 기능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사일로 자체가 아니다. 사일로를 가로질러 과업을 수행할 권한이 팀 리더에게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 회사의 솔루션 팀이 신규 고객군을 위한 사업을 시작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중국 공장의 이슈로 납기가 이틀 정도 늦어지게 된 것이다. 기존 고객에게 납기 지연 이틀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신규 고객에게는 공장 라인이 멈추는 사태였다. 솔루션 팀장은 직접 해외 공장으로 날아가 공장장들을 하나하나 설득해야 했다. 공장장들은 기존 사업의 논리로 움직이는 기능 구조 안에 있었기 때문에,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드러커는 팀 리더십이 직급이 아니라 과업에서 나오는 권한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팀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짚는다. 지속적인 미션, 명확한 목표, 과업 기반의 리더십, 공동 책임. 앞서 살펴본 솔루션 사례는 이 네 가지가 모두 갖춰지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미션이 불명확하니 목표를 세울 수 없었고, 목표가 없으니 리더십의 근거가 없었고, 직급 구조가 팀 권한을 압도하니 공동 책임도 작동하지 않았다.
인재개발을 담당하는 토론자가 이 문제의 본질을 이렇게 짚었다.
“말만 팀이지 실제로는 그냥 기능 구조다. 팀의 목표와 그 목표에 맞는 구성, 작동 원리가 있어야 하는데, 사람만 모아놓는다고 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사일로는 기능 구조의 본질이다. 사일로를 넘기 위해 만든 팀에 사일로를 넘을 권한이 없다면, 그 팀은 팀이 아니라 또 하나의 부서일 뿐이다.
맺음말
지금 당신의 조직에서 ‘팀’이라는 이름의 조직 하나를 떠올려 보라. 그 팀에는 풀어야 할 과업이 명확히 정의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과업을 수행할 권한이 팀 리더에게 있는가.
답이 둘 다 ‘그렇다’가 아니라면, 그것은 이름만 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