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무시하면 조직은 목적을 잃는다
2022년부터 현대차그룹 및 외부 전문가 4명은 매주 월요일 아침 7시, 온라인으로 모여 피터 드러커의 저서 《매니지먼트》를 읽고 토론한다. 이 글은 2026년 2월 2일과 9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42장: 조직의 구성 요소(The Building Blocks of Organization)’ 강독회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들어가며
지난 챕터에서 우리는 조직 구조 설계의 출발점이 핵심 활동을 정의하는 것임을 배웠다. 어떤 결과를 원한다고 해서 그 결과를 책임질 조직을 하나 신설한다고 그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먼저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핵심 활동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이번 챕터에서 드러커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활동을 정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활동들을 기여의 유형에 따라 구분하고, 유형이 다른 활동들이 서로 섞이지 않도록 조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활동이 직접적으로 매출이나 영업이익을 만들어내는지, 그것에 기여하는 활동인지, 아니면 지원 활동인지, 혹은 위생·양심 활동인지를 구분하고 각각에 맞는 방식으로 다루어야 한다.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토론을 거치며 이 주장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드러커가 말하는 조직 설계의 세 원칙
드러커는 이 챕터에서 조직 설계의 구체적인 작업 방식을 제시한다.
첫째, 핵심 활동을 정의하라. 우선 세 가지 질문에서 출발한다. 목표 달성에 탁월함이 요구되는 영역은 어디인가. 실패하면 기업 생존을 위협하는 취약 영역은 어디인가. 우리가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서 도출된 것이 핵심 활동이고, 핵심 활동이 조직 구조의 하중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야 한다.
둘째, 기여 방식에 따라 분류하라. 모든 활동을 네 가지로 구분한다. 직접 재무 성과를 만드는 ‘수익 창출 활동’, 수익 창출에 직결되지는 않지만 측정 가능한 아웃풋을 내는 ‘결과 기여 활동’, 다른 활동의 성과 안에 녹아 기여하는 ‘지원 활동’, 그리고 결과와 직접 연관은 없지만 실패하면 조직에 피해를 주는 ‘위생·유지 활동’이다.
셋째, 기여 방식에 따라 배치하라. 핵심 활동은 비핵심 활동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수익 창출 활동은 비수익 활동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지원 활동은 수익 창출 활동과 섞여서는 안 된다. 기여 방식이 다른 활동들을 같은 구조 안에 섞어 넣는 순간, 강한 쪽의 논리가 약한 쪽을 잠식한다.
모든 활동이 수익 창출 활동이라는 착각
우리는 실리주의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기업의 모든 활동은 수익 창출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여기서 착각이 시작된다.
기업의 활동이 수익 창출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과, 모든 활동이 수익 창출 활동이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런데 많은 기업들이 이 둘을 혼동한다. 모든 활동을 수익 창출 활동처럼 운영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조직이라고 착각한다.
그 결과 지원 활동이나 위생·유지 활동에도 정량적 결과와, 때로는 재무 성과까지 요구한다. 기여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활동들을 같은 잣대로 평가한다. 이것은 조직 운영의 오해를 불러오고, 그 활동들이 정말 해야 할 일을 방해한다.
조직이 반복하는 실수들의 세 가지 장면
새로운 전략 과제가 생겼을 때, 조직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한다. 사례는 다르지만 문제의 뿌리는 같다.
첫 번째 장면 — 핵심 활동을 정의하지 않고 조직부터 만든다
미디어 그룹에서 있었던 일이다. 디지털 전환이 경영의 화두가 되던 시기, 이 회사는 IT 본부를 신설하고 외부에서 개발자 출신 리더를 영입했다. 모두들 새로운 리더와 조직이 전환을 이끌어 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정작 경영자들(새로운 조직의 리더 뿐 아니라 전체 고위 임원들)이 물어야 할 질문을 하지 않았다. 디지털 전환이 콘텐츠 제작과 유통이라는 기존 기업의 강점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지 혹은 탁월함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묻지 않았다. 이를 위해 기업의 핵심 활동을 어떻게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핵심 활동이 정의되지 않으니 기여 방식도 불분명했다. IT 본부가 기존 사업을 지원하는 역할인지, 독립적인 새로운 사업을 만드는 역할인지 모호했다. 기존 조직은 여전히 전통 미디어 관점을 고수하며, 새 조직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았다. IT 본부는 별도 서비스를 만드는 쪽으로 표류했고, 당연하게도 실패했다.
기여 방식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조직은 스스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처음의 목적과 어긋난다.
두 번째 장면 — 핵심 활동을 찾았지만 기여 방식을 구분하지 않는다
국내 제조사가 선행기술원을 신설했다가 2년 만에 해체했다. 10년 이상을 내다봐야 하는 조직이 2년 만에 해체됐다는 것 자체가, 이 조직이 처음부터 단기 성과 창출의 관점에서 운영됐음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단기 상품 개발 기여로 평가받는 R&D 조직 안에 속하다 보니, 선행기술원은 살아남기 위해 2~3년 내 현실화 가능한 과제로 스스로를 수렴시켰다. 그렇게 존재 이유를 잃었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여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활동에 종속시킨 구조의 문제였다. 수십년간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선행 연구개발 조직들과 이 사례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구조에 있음이 명확해진다. 리더의 의지나 역량이 원인이 아니다. 성공하는 조직들은 처음부터 일반 R&D와 다른 별도의 조직으로 설계하고, 다른 평가 기준과 보고 체계를 부여했다.
세 번째 장면 — 핵심 활동을 전담 조직에 위임하고 전사 원칙으로 만들지 않는다
한 국내 기업은 미국 시장에 진출하며 탁월함이 요구되는 영역으로 품질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품질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인력과 권한을 부여했다. 처음에는 잘 작동하는 듯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부작용이 발생했다. 품질이 품질 조직의 일이 되자, 다른 조직에는 면죄부가 생겼다. 품질 조직은 점점 비대해졌고, 정작 현장의 품질 의식은 약해졌다. 품질은 기능이 아니라 모든 관리자와 구성원의 근원 가치가 되어야 했다.
대비되는 사례가 듀퐁이다.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듀퐁에는 안전 조직이 따로 없다. 안전이 모든 관리자의 근원 가치이기 때문에 별도 조직이 필요 없다. 핵심 활동은 전담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사적으로 내재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조직을 만드는 것과 핵심 활동을 설계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맺음말
나는 이 챕터를 읽으며 오랜 시간 경영 현장에 있으면서도 이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략 과제가 생기면 조직을 만들었고, 조직이 만들어지면 산출물을 요구했다. 기여 방식이 다른 활동들을 같은 잣대로 평가했고, 그 결과 어떤 조직들은 처음의 목적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갔다. 그 근본적인 이유를 조직 구조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깊게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챕터에서 드러커는 조직의 목적이 인간의 에너지를 해방시키고 동원하는 것, 즉 성과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헌 분석은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설계 작업이다. 각 활동이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는지를 이해하고, 그 기여 방식에 맞는 구조를 만드는 것. 조직을 신설하는 것이 아니라, 각 활동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는 것이다. 기여 방식이 제대로 구분되고 각자의 자리에 놓일 때, 조직은 비로소 만들어진 목적대로 작동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구성원들의 진짜 에너지가 발휘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