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없는 경영의 함정
매주 월요일 아침 7시, 우리 네 명은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함께 읽고 토론한다. 대기업 경영연구원장, 인재개발원을 이끄는 HRD 리더, 피터 드러커 전문가인 작가, 그리고 필자까지. 각자의 현장 경험과 관점이 만나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간다. 이번 주 챕터는 40장 ‘경영자와 경영과학 The Managers and Managerial Science’이다.
들어가며
어느 국내 제조 기업이 핵심 인재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국내 최고의 인사 전문가와 컨설팅 회사가 참여했고, 제도를 그룹 임원들에게 발표하는 자리에 저명한 교수 한 분이 기조연설자로 초빙됐다. 그런데 연설을 들은 한 참가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교수 말대로라면, 우리 회사는 이 제도를 도입하면 안 되겠는데.”
수개월의 노력과 상당한 비용이 투입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가장 근본적인 질문 — 이 제도가 우리 회사에 맞는가 — 은 아무도 던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글은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40장 ‘경영자와 경영과학’을 읽고 나눈 토론을 바탕으로 한다. ‘경영과학’이라는 말 자체는 오늘날 자주 쓰이지 않지만, 그 자리를 경영학의 세부 분과들과, 경영 컨설팅사, 그리고 SCM·ESG·Industry4.0·AI 전문가들이 채우고 있다. 드러커가 수십 년 전에 던진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외부의 경영 지식과 기술 전문가들을 제대로 쓰고 있는가.
드러커는 이 챕터에서 경영과학이 왜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지를 묻는다. 많은 경영과학 전문가들은 잘못된 출발점에서 시작했다. “기업이란 무엇인가, 경영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묻는 대신, “내 도구를 어디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먼저 물었다. 그 결과 전체 시스템의 성과가 아니라 부분의 효율을 최적화하거나, 리스크를 제거에만 집중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경영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드러커는 경영자가 경영과학에게 기대해야 할 것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기본 가정을 검증할 것, 올바른 질문을 찾아낼 것, 하나의 답이 아닌 복수의 대안을 제시할 것, 공식이 아닌 이해를 줄 것. 하지만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그 반대를 요구한다. 당장 쓸 수 있는 답을 가져오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져오는 사람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외부의 경영 지식과 기술 전문가들을 제대로 쓰고 있는가.
키워드로 시작하는 컨설팅은 처음부터 길을 잃는다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나는 한 가지 패턴을 반복해서 목격했다. 컨설팅을 발주하는 이유를 내부에서 찾는 기업과, 외부에서 찾는 기업이다.
실은 대다수가 후자에 속했는데, 이들은 “경쟁사가 이걸 하고 있다”, “요즘 시장에서 이 키워드가 뜨고 있다”는 이유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커머스, 빅데이터, 인더스트리 4.0, ESG, 그리고 지금은 AI. 유행하는 키워드가 달라질 뿐, 패턴은 똑같다.
사실 이 패턴이 만들어지는 데는 컨설턴트들도 공모한다. 키워드가 유행하면 그것을 제품화해서 팔 수 있다. 매번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하지 않아도 된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함께 유행을 소비하는 구조다. 드러커가 경영과학자들을 향해 던진 비판 — “내 멋진 기법을 어디에 적용할 수 있는가라는 식으로 접근했다” — 이 컨설팅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문제는 명확한 질문 없이 키워드만 들고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무엇을 만들어내는가다. 경영자가 스스로 공부하며 질문을 정의해야 할 자리에 “공부를 대신 시켜달라”는 요청이 들어서면, 그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방향을 잃는다.
ESG가 남긴 교훈, 그리고 AI가 반복하고 있는 실수
몇 년 전 ESG는 기업 경영의 최대 화두였다. 기업들은 앞다퉈 ESG 전문가를 찾았고, 관련 프로젝트를 쏟아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의 에너지가 향한 곳은 “ESG가 우리 경영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가 아니었다. “규제 기관이 요구하는 ESG 점수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였다.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업 본질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기보다, 공시 기준과 평가 항목을 숙지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드러커의 언어로 말하자면, 전체 시스템의 성과가 아니라 부분의 점수를 최적화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그러다 규제 기관의 관심이 식자, ESG 붐도 함께 꺼졌다.
하지만 ESG가 제기한 핵심 질문 — 기업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 은 사라지지 않았다. 점수가 사라졌을 뿐,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질문을 진지하게 붙들고 씨름해온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차이는, 이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지금 AI 전환이 정확히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무엇을 이루려는지가 불분명한 채로 유행하는 솔루션을 각 부서에 붙여나가면, 조각들이 서로 맞지 않는 누더기가 된다. 비용은 늘고 성과는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AI 프로젝트들이 지금 그 상황에 처해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처럼, 부품 하나하나는 최신이지만 전체로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다. 경영과학의 역할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경영자가 올바른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올바른 질문을 정의하는 것은 애초에 경영자의 몫이다. 그 질문 없이 전문가를 불러놓고, 끝에 가서 남 탓만 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공부하는 경영자는 왜 드문가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찬 세미나에는 늘 사람이 많다. 하지만 토론을 나누다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진짜 공부하러 온 사람과, 공부하고 있다는 느낌을 얻으러 온 사람은 다르다. 후자가 훨씬 많다. 오늘 들은 내용이 자신의 질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붙들고 씨름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 토론에서도 이 현상이 화두로 올랐다. 경영 연구를 이끄는 한 토론자가 핵심을 짚었다. “경영자들한테 책임감을 상기시키면 다들 늘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책임감의 결이 다 같은 게 아니에요. 어떤 책임감은 공부하게 만들고, 어떤 책임감은 그러지 않습니다.”
왜 많은 경영자들이 그 무게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이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없다. 그 답이 경영자 개인의 성실함이나 의지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맺음말
“경영과학을 잠재력에서 성과로 전환하는 것은 경영자의 몫이다.”
이 챕터의 마지막 문장은 ‘경영자가 스스로 공부하고, 그 공부를 통해 자신이 가진 질문을 끊임없이 다듬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던지는 질문이 올바른가. 내가 세운 가설이 맞는가. 이것을 검증하기 위해 외부의 전문가와 지식을 활용하는 것 — 이것이 경영자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기업에서 이 순서가 뒤집혀 있다.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이름 아래, 당장 쓸 수 있는 답을 가져오는 것만이 가치 있다고 여긴다. 질문을 다듬는 데 시간을 쓰거나, 가설을 검증하는 데 비용을 투입하는 것은 낭비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 접근법이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미 보았다. 키워드는 바뀌어도 문제는 반복된다. ESG 점수를 맞추는 데 집중하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본질 질문을 놓쳤다. AI 솔루션을 붙이는 데 집중하다 무엇을 이루려는지를 묻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원칙을 이해하고, 그 과정을 스스로 판단하는 것. 경영자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은 여기서 시작된다. 이것을 외주 줄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을 책임으로 인식하는 경영자만이, 외부의 전문가를 제대로 쓸 수 있다.
매주 월요일 아침 7시,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독서 토론 모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