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포비아’ 시대의 경영자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30장: 무엇이 경영자를 만드는가(What Makes a Manager?)
2022년부터 4명의 현대차그룹 및 외부 전문가가 온라인으로 매주 월요일 아침 7시부터 2시간씩 피터 드러커의 저서 《매니지먼트》를 함께 읽고 토론합니다. 각자의 현장 경험과 관점이 만나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갑니다.
2025년 9월 15일, ‘30장: 무엇이 경영자를 만드는가’ 강독회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들어가며
지난 29장에서 ‘경영자의 존재 이유’를 살펴보았다. 그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경영자는 대체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정의로 이어진다.
우리는 일론 머스크나 젠슨 황 같은 ‘스타 경영자’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위대한 기업의 성취는 결코 창업자 한 사람의 천재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29장에서 다룬 것처럼) 그 비전을 현장에서 실행하고 가치로 바꾸어내는 수많은 ‘경영자’들이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그런 훌륭한 경영자들이 충분히 존재할까? 가장 우려할 만한 현상은 이른바 ‘리더 포비아’다. 현대차 직원 중 우수 인재로 분류되는 이들조차 팀장 보직을 기피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과거의 팀장은 그 팀의 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본인보다 뛰어난 전문성을 가진 다양한 팀원들을 이끌며 성과를 내야 한다. 아래로는 MZ세대 구성원들의 요구에 시달리고, 위로는 끊임없는 성과 압박을 받는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무능한 관리자가 되느니, 내 분야의 전문성을 지키는 전문가로 남겠다”며 경영자의 길을 거부하고 있다.
리더십의 위기, 불확실성의 증가, 전문성의 매몰이라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연 제대로 된 경영자를 확보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도대체 우리가 말하는 경영자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어야 할까?
책의 핵심 내용
경영자의 기준은 ‘권력’이 아닌 ‘책임’이다
흔히 경영자라고 하면 ‘남을 통해 성과를 내는 보스’를 떠올린다. 그러나 드러커는 경영자의 기준이 직속 부하의 유무가 아니라,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책임을 지는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선임 AI 연구자처럼 부하 직원은 없지만 독자적으로 막대한 기여를 하는 ‘개별 전문가(Individual Contributor)‘는 엄연히 경영진의 일원이다. 부하 직원의 숫자로 자신의 위상을 증명하던 시대는 끝났다.
유능한 전문가를 무능한 관리자로 만드는 시스템의 모순
전통적인 조직에서는 더 높은 보상을 받으려면 반드시 관리직으로 승진해야만 한다. 이는 뛰어난 전문가를 원치 않는 관리 업무에 밀어 넣어 조직의 핵심 역량을 갉아먹는다. 드러커는 오페라의 프리마돈나가 매니저보다 더 많은 출연료를 받는 것이 당연하듯, 스타 전문가가 관리자보다 높은 보상을 받는 구조가 지식 기반 조직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높은 보상을 위해 원치 않는 관리직을 맡기는 시스템은 유능한 전문가를 무능한 관리자로 만드는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상향과 측면 소통의 중요성
경영자를 자신의 부하 직원들을 통해서 성과를 내는 사람으로 정의하면, 그는 조직 관리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조직의 사일로(Silo) 현상으로 이어진다. 진정한 경영자라면 자신의 성과가 조직 전체와 연결되도록 상향식 소통과 측면 소통에 집중해야 한다. 또한, 조직 내 전문가들의 업적이 성과로 연결되도록 돕고, 조직의 목표를 전문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여 통합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토론을 통한 통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경영자의 실체
이 글은 경영자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통념을 반박하며 새로운 생각거리를 던져 주지만, 정작 그래서 누가 경영자인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강독회 참여자들은 드러커의 통찰과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자의 본질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나누었다.
성실한 관리자와 책임 있는 경영자의 차이
우리는 조직의 관리가 아닌 기능과 책임이 경영자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단순히 주어진 KPI를 성실히 달성하는 ‘현장 관리 감독자’를 경영자라 부르지 않는다. 관리 감독자는 상위 조직의 목표를 모른 채 부여된 수치에만 매몰된다. 반면, 진정한 경영자는 자신의 일이 전체 조직의 성과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고민하고, 자신이 정한 목표에 스스로 책임을 진다.
드러커가 강조하는 공헌은 파편화된 개인의 성과가 아니다. 개인이나 부서의 성과가 훌륭해도 조직 전체의 목표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경영적 공헌이라 부르기 어렵다. 경영자의 덕목은 단순한 성실함이나 추진력, 집요함이 아니다. 관리자가 전사 경영자로 성장하려면 사고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하위 리더일지라도 “내 팀의 일만 잘하면 된다”는 마인드를 버리고, 조직 전체의 목표와 사명감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상위 조직 관점에서의 사고’를 반복 훈련하는 것이 전사 경영자로 성장하는 실질적인 발판이 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책임을 지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경영자가 될 수 있다.
전문가와 경영자의 차이
일반적으로 전문가는 자신이 보유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해진 범위 내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내는 데 집중한다. 반면 경영자는 전문가의 지식이 조직의 다른 부분에서 성과로 전환되도록 하는 **‘번역가’이자 ‘연결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 차이를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CJ ENM 같은 기업은 소수의 재능 있는 크리에이터(전문가)들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하기를 즐길 뿐, 회사의 시스템이나 경영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때 조직이 흔히 하는 시도는 스타 크리에이터를 임직원으로 영입하고 높은 직급과 연봉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경영자로 전환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자신이 만든 쇼가 흥행하기를 바라는 것과, 직접 회사에 시스템을 구축하여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경영자는 단순히 조직 내 직급이 높은 사람이 아니다. 경영이라는 일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전문 영역임을 인지해야 한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경영진은 특정 크리에이터의 존속 여부와 상관없이 작동하는 기업 역량과 시스템을 갖추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즉, 스타 크리에이터에게는 ‘프리마돈나’로서 최고의 대우를 하되, 경영은 ‘시스템 설계자’인 경영자에게 맡기는 이원적 구조(Dual Track)가 필요하다.
진정한 의미의 경영자는 기술자나 전문가를 넘어, 깊이 있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직 전체를 리딩하고 어드바이저 역할을 수행하며 그룹 내 다른 경영자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경영자는 ‘계급’이 아니라 ‘기능’으로 정의된다. 드러커는 현실의 혼란을 걷어내기 위해 **‘조직 전체 성과에 대한 공헌과 책임’**을 핵심 지표로 삼았다.
마치며: 계급장을 떼고 ‘기능’에 집중하라
우리가 찾은 결론은, 경영자는 주어진 업무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성과를 스스로 정의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짜 경영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